잠시 휴식!!! / / 2018. 12. 4. 16:31

세기의 군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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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세계 최초의 정복 왕조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 상왕조의 산악병에 대해서 거론해야 할 것 같군요.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하왕조를 멸망시킨 이집트 하왕조는 창과 활로 무장한 집단이었는데, 고대 전쟁사에 획을 그을 만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활은 기원전 만년경에 처음 개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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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상이집트 제발 사바하 유적 117(F, 벤도로프의 주장
)


그후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 민족을 꼽으라면 기원전 2000년경의 히타이트를 꼽아야 할 것입니다. 서구의 최초의 철기 문명을 이룩한 히타이트는 강력한 철제무기를 앞세워 돌도끼와 청동기로 무장한 중동의 제국들을 거의 섬멸해버리다시피 합니다. 이들의 무기는 투창보다는 역시 만년경에 개량된 양날 단검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원형은 후에 로마의 레기온의 단검과 유사한 점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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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다음은 아시리아입니다. 히타이트와 같은 수메르인종으로 구별되는 이들 아시리아 군의 특징은 바로 경쾌한 2륜전차에 있었습니다. 히타이트 역시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들의 전차는 짐수레라고 해도 크게 차이가 없을 지경이었고, 4륜으로 앞바퀴에는 차축도 없었던 반면 아시리아의 주력 전차는 2륜으로 사수와 기수가 2 1조로 활동하게 조직화 되었는데, 후에 중동지방과 그리스 지역까지 전례되어 전투용 전차로 널리 사용되게 됩니다. 이들의 활동기는 히타이트와 교체기로 대략 기원전 1300년경에 최강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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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의 최강은 아무래도 페르시아의 불사인을 거론해야 할 것 같군요. 중무장 보병대인 불사인은 장비의 우수성보다 그 용맹성을 인정받았는데 페르시아의 황제들은 이들을 이용하여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물론 소아시아 지역까지 영향권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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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전반이 페르시아 불사인의 전성기였다면 후반기에는 그리스의 중무장 보병인 팔랑크스(팔랑세... 부르고 싶은데로 부르세요. 괜히 테클 걸지 말고)의 활약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마라톤 회전에서 이들이 페르시아의 불사인을 격파함으로써 최강군의 위치를 확보했다고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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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원전 5세기 말엽에는 전략 전술적 측면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한데, 그것은 기병이 탄생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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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스키타이인들에 의해서 에렉투스 카발루스의 선택교배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기원전 2000년경부터는 승마 가능한 말이 탄생하게 됩니다만, 여전히 현세의 말과는 크기와 힘에서 큰 차이점을 보이며 기수를 말의 제어 위치인 잔등에 태울 수 있을 만큼 말의 힘을 좋지 못했기에 기수는 말의 대퇴부에 승마해야 했음으로 전투에서 이들의 지위는 전차병에 비해서 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잔등에 기수를 태울 수 있는 말이 탄생한 것은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서 였고, 이 때부터 전차의 효용성이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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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와 활을 쏘는 사수를 동시에 태우고 달릴 수 있을 만큼 말이 튼튼해졌기 때문이죠. 물론 그 뒤에도 전차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유용한 무기로 활용되었는데 이는 전차 자체의 회전톱날, 충각등이 보강됨으로 전차의 돌파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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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정한 기병의 탄생을 거론하기 위해서는 역시 알렉산더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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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의 아버지가 그리스를 정복할 당시부터 그 위용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 마케도니아 기병군은 그리스 본토인에 의해 바르바로이(야만족)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이들이 스키타이인과 직접적인 교류, 혹은 그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제기하는 하나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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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스키타이로 부터 도입한 튼튼한 말을 보유함으로써 기병 전력을 보유할 수 있었는데, 역시 소수의 기마병대를 보유하고 있던 그리스군이 이들에게 그토록 쉽게 밀리게 된 원인 중에 하나는 이들 특유의 뛰어난 기마기술도 있지만, 역시나 기병 전력에 대한 탁월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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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훗날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된 알렉산더가 소수의 병력으로 페르시아의 대군을 상대로 믿겨지지 않는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원동력은 기병의 돌파력과 기동성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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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페르시아의 전차와 불사인, 그리고 그리스의 팔랑크스 역시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기원전 4세기의 전국의 변화를 가져온 주체는 마케도니아 기병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저는 이들에게 최강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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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에는 좀 독특한 부대에게 최강의 지위를 부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페니키아 겔리함대죠. 훗날 한니발을 낳은 민족으로 유명해지는 카르타고의 정예군이었던 이들은 우수한 조함기술로 지중해 세계를 장악하는데 성공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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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의 최강의 지위는 진시황의 흑갑군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진나라의 통일의 원동력이기도 했던 진시황의 친위부대 흑갑군은 궁병과 보병 그리고 기병의 조합이 잘 이루어진 최강의 군대로서 기보전술의 전형을 가장 여실히 잘 보여주었기에 이들에게 최강의 지위를 부여함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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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에 이르러 중국의 조병, 병력 활용 전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게 되지만, 각 제후국간의 대립의 끝을 낸 진시황의 흑갑군이야 말로 전국시대 전술 발전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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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원전 2세기는 또 다른 세력이 그 힘을 펼치게 되는 시기이도 한데, 그것은 포에니 전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로마군이 등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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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갑군이 기,,보의 조합을 중시한 반면, 중무장 보병대를 주력으로 삼은 로마군은 100인대를 기준으로 하는 보병의 소규모 전술 적응 능력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들은 이후 수 세기 동안 서구 세계 최강의 군대로 군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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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에게도 기병대가 있기는 하였지만, 기병전술에 논함에 있어서 동양의 그것에 비교될 수 없는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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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비롯한 서구의 기병은 등자를 가지지 못했기에 기수들이 안장에 걸터앉은 채 싸워야 했기 때문에 전투시에 이들이 말 잔등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무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말배를 발로 꼭 감싸는 기마술이 필요했는데 이러한 기술은 하루아침에 배울 수 없었기에 기병의 충당에도 큰 문제점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마병 자체도 무거운 장비를 다룰 수 없는 경기병에 한정되는 약점을 드러냅니다. (요즘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안장에 전부가 등자가 달려있는데 이게 바로 헐리웃 액션^^이라는 것입니다
.)

서기로 넘어오면서도 여전히 서구에서는 로마군이 그 정점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동방에서는 독특한 세력이 하나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고구려의 중갑기병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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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은 등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수는 물론 말까지 갑옷을 입힌 당시로는 최신기술이 집약된 최강의 전사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의 주요 활동시기는 서기 3세기부터 6세기까지인데, 이는 중국의 위진 남북조시대로 골육상쟁을 거듭하는 가운데 동방의 지배자의 위치를 확보하는 시기이도 합니다
.


이러한 중갑기병의 활용은 서구에서는 서기 7세기 이후, 즉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시작되는데 이는 게르만의 독특한 사회구조와 결부되어 하나의 전사계급으로 성장하게되는 바, 이후 서구 세계 군대의 핵을 이루게 되는 기사 집단의 등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
단위 부대명으로 거론하자면 정복왕조 프랑크제국의 메르뱅지엥 왕조, 사를뉴마뉴로 유명한 카롤랭지앵왕조등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간단하게는 인종적으로는 갈로-로마인(게르만인이 아님) 국가명으로는 프랑크 제국을 선두로 이후 프랑스를 거론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결론적으로 8세기와 9세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프랑스 기사집단이 서구 최강이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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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시기에 거론해야 될 것 같은 군대가 두 개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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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게르만족의 이동을 불러온 훈족의 경기병대요. 둘째는 아랍세계의 열풍으로 몰아친 이슬람 보병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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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 추가하자면 인도의 코끼리병도 포함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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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첫번째인 아틸라의 경기병대는 보급 수송이라는 측면에서 취약점을 드러내며(아틸라 원정 후반의 주된 실패의 원인) 이들이 중국의 서북부에서 활동하던 흉노와 같은 민족이라면 거론할 값어치도 없기 때문에(이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증거는 스키타이 유물을 통해서 단 하나의 증거가 있을 뿐이다.) 최강으로 이름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두번째인 이슬람 보병대는 그 반월검의 두려움으로 아랍세계를 평정했음에도 이들과 맞선 군대의 조악성이 너무 유명한 관계로 거론치 않겠으며, 동시에 훗날 엘시드로 유명해지는 이베리아 반도 해방전에서 너무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감점되었습니다.(사실은 이후 등장하는 투르크 전사집단에 보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 제외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

세번째인 인도 굽타왕조의 코끼리병 역시 새로운 측면이라고 볼 수 없는 전술적특징이 없기 때문에 기원전 2세기경의 한니발의 원정때와 손톱만큼도 변화가 없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

이후 최강의 권좌는 왕조가 계속 교체되는 가운데 14세기까지 중갑기병과 기사대가 그 최강의 위치를 유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구에서 무적으로 군림하던 기사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게 되는 사태가 하나 발생하는데 그것은 백년전쟁에서의 영국 대궁병의 출현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
동방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병집단에 대한 위협요소로서 궁병이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던 반면, 서구에서는 센세이셔널한 하나의 사건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
서구 최강 칭호를 오랜 세월 유지해온 프랑스 기사대가 영국 대궁병에게 쓴 맛을 본 사건말입니다. 물론 일부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만큼 영국의 대궁이 막강한 위력으로 기사들의 갑옷을 뻥뻥 뚫어버렸다는 것은 완벽한 뻥이 되겠습니다
.
일반적으로 판금화된 플레이트 메일은 물론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체인메일도 당시 크기만 컸지 여전히 안감과 겉감의 재질이 같은 만년전의 활과 별반 다를게 없는 단순궁인 영국 대궁병에게 뚫릴 만큼 허접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그에 비해서 동양에서는 안감과 겉감의 재질이 다른 복합궁이 널리 사용되었는바, 10세기에서 11세기경 주목할 만한 군대 집단이 탄생하게 됩니다. 바로 고려 궁병이죠
.
그러나 이들의 전과는 크게 주목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능력이 우수하고 무기 체계의 우수성으로 이들에게 잠시 동방 최강의 지위를......(어거지죠.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다시 약간의 제맘대로 할 자유는 있는 것입니다
.)

그럼으로 서구 세계에서는 여전히 기사가 그 지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동방에서는 기병과 궁병 보병이 가위, 바위, 보의 구도로 얽혀있는 시대가 길게 지속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뭐 단위 부대별로 정리하자면 서구에서는 프랑스 기사대, 영국 시민병, 신성로마제국의 군대 정도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구도에서의 변화는 거론하기 어려우며, 이 최강 부재의 시대는 화기가 등장할 때까지 혼란의 시기로서 존재하게 됩니다
.

아 이시기에 반드시 거론해야 할 군대 집단을 빼먹었군요
.
바로 바이킹입니다. 이후 영국에 노르만 정복 왕조를 세우기도 하는 북구의 해적집단 바이킹은 최초에는 근본적인 약탈을 주로 하는 해적집단이었습니다만, 이들의 롱쉽과 기민한 활동력은 최강의 지위를 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들이 전술이 현대 해병 전술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바다와 육지에서 고루 손색없는 전투력을 보여주는 바, 이들의 점수는 후하게 주어야 할 것입니다
.
결정적으로 배를 짊어지고 러시아 깊숙한 지역과 도나우강 유역까지 나타난 이 괴물같은 능력은 최강의 칭호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기도 합니다. (이들의 주요 활동 시기는 8세기에서 11세기입니다만, 소속국가를 가졌다기보다는 부족단위로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좀 골치아프기도 합니다
.)

14
세기는 서구 전사에 있어서 기사대의 밀집방진에 대한 회의가 밀려들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봐야 합니다. , 서구에서 오랜동안 그 빛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궁병의 대 기병 전투력이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백년 전쟁으로 여실히 드러났는데, 양국의 기사대는 크레시전투와 아쟁쿠르 전투등에서 말을 타지 않고 자국 궁병대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는 기사대의 밀집 방진이 적에게 보다 기사대 내부의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며, 또한 궁병의 원거리 사격에 취약한 측면을 여실히 보여주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14세기 후반부터 플레이트 메일류가 널리 보급되면서 궁병의 원거리 곡사 사격에 의한 기사의 사망률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기사대의 말이 날뛰는 바람에 기사대가 아군 진형을 망가뜨리는 원흉이 되었습니다
.)

그렇다고 해서 14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서 시민보병대를 최강의 지위에 올려놓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궁병대는 여전히 화살의 보급을 인력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갑옷류의 발전에 따라서 직접적인 살상력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서양의 과학기술은 이 시기까지만 해도 동양에 비해서 매우 열악한 수준이었다
.)

이러한 동양에 비하면 전술적인 측면과 전략적인 측면에서 열악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던 서구 사회는 지들끼리는 우수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었고, 다시 오리엔트지방으로 침입하여 성지를 회복하겠다며 무슬림의 반월검에 맞서고 있었지만, 이들의 환상은 13~14세기의 몽고의 침입으로 끝장나게 됩니다
.

, 13~14세기의 진정한 강자는 몽고기병이라는 말씀입니다
.
원래 몽고족이 유목 민족이었기 때문에 대초원지대라고 불리는 유목지역의 동쪽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몽고 사막에서 중국 서부, 현재의 네팔, 아프카니스탄에서 흑해 연안에 이르는 이 광대한 초원지대가 말들의 고향이라는 점입니다
.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최초의 말은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습니다만, 이들을 개량하여 승마 가능한 말을 만든 것도 이들이며, 기병 전술을 탄생시킨 것도 초원지대의 유목민족이었습니다. , 유목민족이란 생활자체가 기마와 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기마 전술의 극단까지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

하지만 몽고기병은 이전까지의 유목민족과 크게 다른 점을 두가지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백인대와 천인대 만인대로 올라가는 체계적인 군사조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과 안감과 겉감의 재질을 달리하여 사거리와 파괴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복합궁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후 역사에서 이들의 궁기병 전술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존재인 몽고기병은 최강이라는 지위를 부여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 한가지, 서구인들이 동양인종을 황인종이라고 부른 이유가 황색이 경고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몽고족의 침입으로 쓴맛을 본 서구인들이 동양인들에 대한 두려움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죠. 솔직히 말해서 동양인의 피부색은 노란색보다는 황토색에 가깝죠
.)


15
세기는 동 서양 모두에서 전술적인 파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것은 화약의 상용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
특히 서구에서 화약의 전래는 기사계급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후 서구 전사에서 기병의 역할이 감소하게되는 직접적인 원인을 가져오게 됩니다
.
이 시기에 주목해야 할 군대집단으로는 스위스 석궁병, 투르크 노예군, 예나체리, 베네치아 겔리함대를 들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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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이들 중에 최강을 꼽으라면 여전히 어려운 문제군요. 모두 일장 일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꼽으라면 저는 이집트의 맘루크를 꼽고 싶군요. 최후의 명예로운 기사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의 맘루크 노예 기병군은 최후의 중갑기병의 로망이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 규율과 전투력으로 유명했기 떄문입니다
.

15
세기가 변혁의 시대였다면 16~17세기는 파란의 시대였습니다
.
서구에서는 대항해시대의 결과물로 상업혁명이 발생하고, 르네상스, 그리고 종교 개혁의 여파로 30년 전쟁이 발발했으며, 동양에서는 임진왜란으로 군사적인 혁명이 발생하기 때문입ㄴ디ㅏ
.

이 시기의 최강군의 지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던 스위스 근위병대, 보헤미아 창기병연대, 스페인 창보병 연대, 스웨덴 정벌군, 일본 조총부대등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해상에서도 걸출한 두개의 군대 집단이 이름을 날리니, 그 중 하나가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이순신의 조선수군입니다
.

화포의 발달과 함께 대구경 함포의 적재가 가능해진 함선들은 기존의 해상에서의 궁병의 역할을 감소시키며 새로이 대양의 왕자로 군림하면서 그 막강함을 자랑했는데, 이들 중에서는 아무래도 조선 수군의 유기적인 전술 활용이 무적함대에 비해서 우수했다고 칭하고 싶습니다. (무적함대는 영국함대에게 너무 어이없이 패배해서리
)

육상에서는 스웨덴 구스타프의 정벌군이 그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으나, 오히려 30년 전쟁을 끝낸 것은 어이 없게도 프랑스 포병대였죠.(삼총사의 악역으로 유명한 리슐리에의 회심의 역작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포병 전술의 발전은 이후 나폴레옹 시기에 와서 프랑스 시민혁명군으로 위용을 떨치게 되는 바, 17~8세기까지도 프랑스 포병대와 시민군은 최강의 위치를 유지하게 됩니다
.

19
세기에는 명확관야하게 육상과 해상에서의 왕자의 위치가 드러나는데, 해상에서는 전열함을 앞세운 영국해군이 육상에서는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 보병대가 그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

이제 문제의 20세기
.
초반에는 해상에서 전통적인 대함거포주의를 앞세운 영국 해군이 위용을 자랑했지만, 육상에서는 포병의 기술적 개량과 맥심 수냉식 기관총의 도입으로 인해 누구도 우위를 점치지 못하는 앉음뱅이 전투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그 당시의 신기술인 비행기와 기구가 전투에 투입되게 되는데, 육상과 해상에서의 전투가 공중으로까지 진보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결정적인 전술무기로서의 역할보다는 육군의 보조적인 역할이었지만, 최강의 공군은 포커 삼엽기의 붉은 남작으로 유명한 독일 공군이 조금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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