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식 / / 2025. 3. 9. 20:32

“약장에 새겨진 108년 역사”…서울미래유산 ‘유일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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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장에 새겨진 108년 역사”…서울미래유산 ‘유일한의원’

이규옥 원장, 부친에게 전수 받은 ‘보사침법(補瀉鍼法)’으로 주민 돌봐
1대 원장 이택성 한의사, 일제강점기 침술 연구 및 독립운동 등 참여

이규옥 유일한의원장

 

[편집자주] 

서울 종로5가 동대문종합시장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세월의 흔적을 가진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자그마한 3층 벽돌 건물의 유일한의원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침술의 대가 이택성 한의사가 1915년 개원해 1945년 종로에 터를 잡은 후 2대에 걸쳐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일한의원은 서울의 유서 깊은 장소로, 지난 2014년 ‘서울미래유산’에도 선정됐다.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한의원을 지키며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오고 있는 이규옥 원장을 만났다.

 

 

Q. 한의원 소개 부탁드린다.

유일한의원은 일제강점기인 지난 1915년부터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이어 내려져 온 한의원으로, 올해 개원 108주년을 맞았다. 명칭의 유래는 오로지 유(唯), 하나 일(一)이라는 뜻을 품는데 한의 의술에 있어 자부심이 오직 하나뿐인 곳이라는 의미다.

 

본래 종로 5가에서 개원했지만 1969년 지금의 장소로 새로 건물을 지어 한의원을 이전하였다. 그동안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3대가 진료받는 한의원으로 유명한데 보통 40년, 많게는 50년 된 환자도 있다. 중풍과 관절염 전문 한의원으로, 대부분이 동네 토박이 환자들이었지만 입소문과 최근 방송 등을 통해 전국에서 오는 환자들이 늘어났으며, 중국과 일본에서도 방문하고 있다.

 

▲부친 이택성 원장이 직접 새긴 간판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이규옥 원장

 

 

Q. 한의원 건물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유일한의원은 서울 종로에 소재한 근린생활시설로, 광복 이전에 개원해 2대에 걸쳐 진료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1969년에 준공된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의 적벽돌건물로, 건축면적 54.81㎡(16평)이다. 1990년대 초반 건물 내부와 외관에 대한 보수공사를 실시했으며, 1층은 진료실과 약재 보관실로 사용하고 2·3층은 주거시설로 이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한의원이 오랜 업력을 간직한 종로5가의 시대적 모습을 보여준다면서 근린생활시설로서 지속적인 관리와 보존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것 같다.

 

 

Q. 부친 이택성 원장은 어떤 한의사인가?

유일한의원의 1대 원장인 부친은 지난 1910년 어의 반규석 한의사에게서 사사했다. 일제가 한의사 면허를 도입하자 2년 동안 배우고 면허를 땄다. 

 

부친은 지난 1914년 당시 이북에서 ‘의생 면허(지금의 한의사 면허)’를 받아 한의원을 개원했다. 그러나 독립 만세운동에 연루돼 면허가 취소되고, 이후 8년이 지난 1929년에서야 다시 면허를 받아 철원에서 한의원을 열 수 있었다. 광복 후에는 종로로 이전해 자리를 잡았다. 당시 부친은 ‘침술의 대가’로 명성을 떨쳤었다. 

 

▲당시 이택성 원장이 이끌었던 침술학회에는 일본인들도 가입해 그에게 침술을 배우고자 했다.

 

1948년 당시엔 한의사 양성 기관이 없었는데 유일한의원에서 공부했다고 하면 한의사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정도였다.

 

부친은 일제의 탄압으로 한의학이 억압받던 시절에도 굴하지 않고 침술을 연구했으며, 침구학원까지 열면서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자신이 연구한 의술을 후대에도 이어나가고자 한의사인 아들을 위해 직접 비서(祕書)도 집필했다.

 

Q. 어떻게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됐나?

처음엔 농대 출신 교사로 사회에 발을 내디뎠지만 가업을 잇기 위해 분필을 내려놓고 침을 들었다. 

 

본래 부친으로부터 한의원을 이어받은 2대 원장은 형으로, 당초부터 한의학을 공부했으므로 자연스레 가업을 이었다. 

 

그러나 형이 군대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가업을 잇기 위해 결혼하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경희대에 다시 들어갔다. 

 

첫아이를 낳고 공부했는데 아내가 뒤에서 묵묵히 지켜줬다. 

 

늦게 선택한 한의사의 길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약재를 썰며 아버지가 하던 것을 보았던 덕택인지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빨랐다. 이후 한의사가 되어 1974년부터 한의원을 운영해오고 있다.

 

▲부친에게 물려 받은 금침과 오랜 세월 닳은 침들

 

Q. 부친에게 물려받은 의술을 소개한다면?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침술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침을 통해 기를 넣고 빼는 ‘보사침법(補瀉鍼法)’을 사용한다. 

 

보사침법은 많은 침을 꽂아놓는 여느 한의원의 침법과는 다르다. 스트레스로 인해 경직된 목, 어깨, 척추 등에 침을 놓고 기를 보내면 침이 저절로 원을 그린다.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 이게 바로 보사침법이다. 

 

본 침법은 한의학 관련 도서에는 있지만 대학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훌륭한 의술임에도 젊은 한의사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다.

 

 

Q. 현재 한의원에 남아있는 부친의 발자취는?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물건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진료실 내부에는 부친이 직접 제작한 약장이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못질이 아닌 목재를 직접 다 짜 맞췄으며, 약장의 글씨도 부친이 직접 쓰셨다. 드라마 허준에도 찬조 출연했던 유품이다. 장을 볼 때마다 아버님 생각이 난다. 

 

또 약재의 무게를 재는 저울과 침도 그대로다. 금으로 만들어진 침은 닳고 닳아 짤막해질 정도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줬다. 이를 본떠 내 금침을 만들어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Q. 현역 유지 비결은?

유일한의원을 이을 제자를 찾을 때까지 현역을 유지하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매일 신경 쓰고 있다. 

 

평소 건강 관리 비법은 식보, 행보, 스트레칭이다. 음식은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약도 되고 병도 된다. 과식하지 않고 80%만 먹고, 적어도 3시간 후에 잠을 자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위산이 계속 나와 염증을 일으킨다. 

 

또 많이 걸으면 무병장수할 수 있으며, 아침에 눈 뜨자마자, 자기 전에 온 몸을 스트레칭하면 몸에 기운이 돈다. 

 

이 세 가지만 지키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

 

 

Q.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종로 일대가 과거에 한의원, 한약상 거리였다. 많을 때는 한의원이 300개 정도까지 됐지만 지금은 많이 떠났다. 

 

과거에 부친이 돌봤던 환자들이 지금도 찾아오신다. 나는 부친과의 약속과 환자들 때문에 이곳을 지키고 있다. 내가 떠나면 그분들은 누가 치료해 주겠는가?

 

다음 대에서 이 한의원을 이어갈 사람이 없어 고민 또한 있다. 

 

가족 중 한의사는 내가 유일해 자칫 유일한의원의 맥이 끊어지고, 선대부터 내려오는 침법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안타깝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 구식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처음 침을 들었던 날을 기억하며 계속 한의원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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